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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공부하기

손책이 살아있다면? 오나라는 어떻게 변했을까?

by 안빈낙도JG 2025. 4. 24.

손책은 삼국시대 초기에 동오를 일으킨 핵심 인물로, 젊은 나이에 강력한 리더십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장강 유역을 통일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20대 중반의 나이로 요절했고, 이후 그의 동생 손권이 동오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만약 손책이 더 오래 살아있었다면, 삼국시대의 구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이 글에서는 손책의 정치적 역량, 외교 전략, 군사력 등을 기반으로 동오의 미래 가능성을 분석하며, 손책이 생존했을 경우 삼국의 판도가 어떻게 변화했을지를 가정하고 다각도로 접근해봅니다.

 

손책의 정복 능력과 동오의 확장 가능성

손책은 원래 원술의 휘하에 있었으나, 이후 독립적으로 세력을 키우며 단기간 내에 강동 일대를 평정한 인물입니다. 그의 공격적이고 단호한 정복 전략은 당시 다른 군웅들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이었으며, 이로 인해 ‘작은 손패’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손책이 생존했다면, 동오는 단순한 방어 중심의 전략을 넘어서 중원 진출을 모색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조조와 유비가 혼란한 가운데 손책은 더 넓은 지역을 빠르게 장악했을 것이며, 양자강 이남에만 머무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형주 지역이나 회남 지역 등 전략 요충지를 선점함으로써 삼국의 균형을 크게 흔들 수 있었고, 나아가 강력한 해상 세력을 바탕으로 한 남방 진출도 구체화되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확장은 후일 손권이 세운 동오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을 가능성이 높으며, 보다 공세적인 삼국 구도를 형성했을 것입니다.

손책의 정치적 카리스마와 내부 결속력

손책은 단순한 군사 지도자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으로도 강한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고 등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으며, 대표적으로 주유, 장소, 노숙 등은 모두 그의 치세에서 중용되었습니다. 특히 그는 인물의 과거보다는 능력을 중시했고, 이러한 실용주의 인사 정책은 동오의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손책이 계속해서 생존했다면, 이러한 인사 정책은 더욱 강화되었을 것이며, 후일 손권 치하에서 발생했던 귀족 간의 파벌 싸움이나 세력 분열 문제도 최소화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손책은 권위와 카리스마를 겸비해 자신의 명령을 신속하게 집행하는 조직 문화를 정착시켰고,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보다 안정적이고 단일한 지휘 체계를 만들어냈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동오의 정치 기반은 더욱 견고해졌을 것이며, 외부 침입에 대한 대응력 또한 높아졌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손책과 조조의 관계 변화 가능성

삼국시대에서 조조는 압도적인 정치·군사적 역량을 갖춘 인물이었으며, 손책이 생존한 상태에서 조조와의 관계는 삼국 구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손책은 젊고 진취적인 리더였기에, 조조와의 대립보다는 일시적인 협력 관계를 모색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예컨대, 유비가 조조에게 반기를 드는 상황에서 손책이 중간자 역할을 하거나, 형주 문제에 관해 조조와 연합을 맺는다면, 조손 동맹이라는 새로운 정치 구도가 형성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유비의 세력 확장은 상당한 제약을 받았을 것이며, 삼국이 아닌 이국 체제로 역사가 전개되었을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반대로, 손책이 조조를 적극적으로 견제했다면, 양측의 충돌은 불가피했을 것이며, 당시 손책의 군사력과 확장세를 고려하면 조조 또한 만만치 않은 도전에 직면했을 것입니다. 특히 손책은 해상 전력과 남방 병력을 기반으로 조조의 후방을 교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중원 지역에서의 권력 균형이 크게 흔들릴 수 있었습니다.

 

손책의 생존이 손권의 역할에 끼친 영향

손책이 생존했다면, 손권은 동오의 주도권을 쥘 기회를 얻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손권은 손책 사후 어린 나이에 후계를 이어받아, 신중한 통치 스타일을 기반으로 동오를 안정시켰지만, 손책과는 성격과 리더십 스타일이 매우 달랐습니다. 손책은 공격적이고 결단력 있는 리더였던 반면, 손권은 외교와 내정을 중시하는 균형형 지도자였습니다. 만약 손책이 오랫동안 생존했더라면, 손권은 군사 혹은 내정 보좌역으로 한정된 역할만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로 인해 동오의 발전 방향 자체가 전혀 다르게 설정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손책이 형주나 중원 진출에 성공했다면, 손권은 역사 속에 묻혀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동오라는 국가의 정체성과 지도 체계는 손권이 아니라 손책 중심으로 형성되었을 것이며, 손권 시대의 외교 중심 노선보다는 보다 공격적 확장 정책이 주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삼국시대 전반의 외교, 전쟁 구도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였습니다.

 

결론

손책의 요절은 삼국의 역사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꾼 결정적 변수였습니다. 만약 그가 생존해 동오를 더 오랜 시간 이끌었다면, 손권 중심의 동오가 아닌, 보다 공격적이고 진취적인 국가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손책의 리더십은 단순한 군사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재 등용과 정치적 통찰력, 빠른 판단력까지 갖추고 있었기에, 그의 생존은 후한 말기 군웅 구도를 크게 흔들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동오가 지금처럼 남방 수비에 집중하기보다는 중원 진출을 목표로 하는 전략 국가가 되었을 가능성, 조조 또는 유비와의 복잡한 정치 동맹과 충돌 구조, 그리고 손권의 부재로 인한 전혀 다른 권력 지도 등이 모두 상상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결국 손책이라는 인물의 부재는 동오뿐 아니라 삼국 전체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으며, 이는 역사의 결정적 갈림길 중 하나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